개명(改名)의 추억

2021. 4. 28. 20:00그러니까 내말은

'개명' 이후, 바꿔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즐거웠다. Photo by Jfanta

 

'개명'을 한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보니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면... 누군가에게 이름을 말할 때의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정도? 누군가는 그런 불편함 정도야...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40 평생 숙제였으니까. 이제야 후기 아닌 후기를 남기는 것은 그때의 답답했던 마음을 글로 남겨두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 지금이 개명 타이밍이야!

초등학교 시절, 정확히 2학년 담임 선생님의 '놀림' 덕에 내 이름이 놀림거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동네 복덕방에서 대충(?) 지어오셨다는 그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살기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버거운 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손에 들려온 이름은 '종긔'였는데, 주민등록 상에는 '기'로 올라갔다. 여하튼 그 놀림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들어온, 뻔한 레퍼토리의 '엉덩이 종기'는 학창 시절 계속 따라다닌 별명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화도 나지 않는 그냥 의연한 상태로 성인이 되어갔다. 

 

누가 이름에 이런 단어를 쓰나. 종종 같은 이름으로 사는 사람을 보기는 했지만 흔한 이름은 아녔기에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기 쉬운 이름이었다는 건 그나마 좋은 점이었다. 문제는 어디에 가서 내 이름을 직접 말해줄 때 매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거다. 자신 있게 내 이름이 '종기'라고 말하지 못하고, 듣는 이가 종길, 종규, 정기... 등으로 되물을 때마다 다시 한번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줘야 할 때마다 더해지는 자괴감으로 언젠가 이름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어릴 때 이름을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바꾸는 게 쉽지 않았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생업이 바쁘셨기 때문에 아들 이름 바꿔주기는 늘 후순위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개명 후의 지금 내 느낌에 빚대어 보면 '아이가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나?'라며 당장 동사무소로 달려가겠지만, 그때는 그런 감수성이 없었던 시절이겠거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법원의 개명 신청 판결, '바꾸는 거 인정!' Photo by Jfanta

 

개명을 하기로 한 건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두 아이가 크는 걸 보면서 좀 더 자신감 있는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선뜻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키우는 내내 이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다는 걸 아셨는지, 부모님께 개명을 하겠다는 결심을 전해드리자 이름을 잘 짓는다는 작명소를 찾아다니시며 몇 개의 이름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특별히 쓰고 싶은 이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발음하기 좋고, 검색으로 동명의 범죄자나 악인이 뜨지 않으면 된다 - 즉, 지금 이름만 아니면 된다 - 는 생각에 어머니께서 골라 주신 이름 중 하나를 쓰게 되었다. 

 

구구절절 사연으로 성공한 개명

개명을 신청할 때 신청 사유에 대해 쓰는 공간이 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오랜 시간 불리던 다른 이름이 있고, 그 이름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주민등록상은 아니지만 실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가족을 제외 보증인 2명이 필요하다. 나도 어릴 때부터 불리던 이름이 따로 있어서 이모와 친한 친구에게 부탁을 해 보증인 인감까지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결국은 어릴 때 쓰던 이름이 아닌 작명소 이름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보증인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서 '놀림거리'가 되던 그 이름으로 내가 얼마나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자존감이 떨어져서 매우 힘들다는 식의 에세이를 제출했다. 이름에 조금의 부끄러움은 있었지만 자존감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개명을 위해서 나는 우울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사실 개명의 과정 중에 이게 가장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이름을 바꿔야 하나... 같은 또 다른 자괴감.

 

처음 해보는 개명 신청이라 꼭 그렇게까지 써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 모를 실패에 대한 우려 때문에 최대한 실패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마침내 개명 허가가 떨어졌다. 허가서를 받았을 때 '아, 이제 나도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 수 있겠구나'라며 기뻐했던 기억이다. 이제 주민등록, 면허증부터 다녔던 학교, 각종 웹사이트의 개인 정보를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40여 년의 불편함에 비하면 이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개명 1년 뒤에 돌잔치도 해준다고 그랬다.

 

한 달 여 이런저런 개인정보를 싹 바꾼 후 친구와 지인들에게 개명 사실을 알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해 많은 축하를 받았다.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사람은 '누구시냐'라고 묻기도 했고, 간혹 개인정보를 바꾸지 않았던 사이트들이 튀어나와 번거롭기도 했다. 그래도 바뀐 이름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즐거웠다. 그리고 오래 써 온 이름이라 한 번쯤 실수로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도 모르는 악감정이 쌓였는지 단 한차례도 실수하지 않고 개명된 이름으로 정확히 말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개명 이후의 삶

개명 이후 무언가 바뀌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흔하게 경험하는 건 아니니까. 간혹 매체에서 '일이 잘 안 풀려서 개명을 했어요. 하고 났더니 일이 막 술술 풀려요' 같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보이긴 하는데, 그건 좀 과장인 듯싶고 특별히 바뀐 것은 없으나 어디에서 이름을 불러줄 때 부담 없이, 좀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바뀐 부분이랄까. 아니,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 개명을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게 이름이라면, '고작 이름인데...'하고 말 것이 아니라 개명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개명으로 자존감을 0.5% 만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무조건 바꾸는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누군가가 '괜찮은데 뭐하러 바꿔?' 식으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해도 결국 이 이름으로 삶을 살아가는 건 내 몫이니까.

 

아, 필명 '제이환타'는 어느 날 회사 후배에게 "전화로 이름을 불러주니까 '주환'을 '주안, 주한, 주완'으로 듣더라 ㅋㅋ" 했더니 "환타할 때 환이요. 하면 직빵인데요?"...라고 해서 생긴 필명이다. 작명료는 필명처럼 시~원하게 '환타 뚱 캔'으로 지불했다.

 

J.